임차권등기에 들인 돈, 1심·항소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갈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임대인이 임차인을 상대로 아파트 인도와 밀린 차임을 청구한 소송에서, 임차인이 "임차권등기를 하느라 쓴 돈을 밀린 차임과 상계하겠다"고 주장한 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습니다. 1심과 항소심은 "그 돈은 따로 절차를 밟아 받아야 한다"며 상계 주장을 잘랐지만, 대법원은 같은 법 조항을 다시 읽어 "이 재판에서 바로 상계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원심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같은 조문을 어떤 틀 위에 올려놓는지에 따라 결론이 갈린 사건입니다.
임대인은 서울 노원구의 아파트를 보증금 2,500만 원, 월차임 50만 원에 빌려주었는데, 임차인이 차임을 밀리자 계약을 해지하고 "집을 비우고 밀린 차임을 달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임차인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이사를 가야 했기에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해 등기를 마쳤고, 그 과정에서 인지대·등기 수수료 등이 들었습니다.
쟁점은 바로 이 임차권등기에 들인 돈입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이 돈을 "임대인에게 청구할 수 있다"고만 정해 두었는데, 임차인이 지금 이 재판에서 곧바로 '상계'로 주장할 수 있는지, 아니면 재판이 끝난 뒤 별도 절차를 따로 밟아야 하는지에서 1심·항소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갈렸습니다.
이 사건을 왜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지
새로운 증거가 나와서 결론이 뒤집힌 사건이 아닙니다. 세 심급 모두 같은 기록과 같은 조항을 보고 있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단 하나, 그 조항을 어떤 법리의 틀에 올려놓고 해석할 것인가였습니다. 당사자가 조문의 문언과 구조를 원점에서 짚어낸 덕분에 대법원이 그 지점을 파기 근거로 삼을 수 있었던, 전형적인 '법리 싸움' 사건입니다.
기본 판결 분석
1. 사건 유형
건물인도 및 차임 상당 부당이득반환 청구 민사사건입니다. 외형은 흔한 임대차 분쟁이지만, 결론을 바꾼 실질은 임차권등기 관련비용을 '상계'로 쓸 수 있느냐는 법률 쟁점이었습니다.
2. 원고(임대인) 주장
차임을 2기 이상 연체해 계약이 해지되었으니 ① 아파트를 돌려주고, ② 해지 이후의 차임 상당 부당이득과 ③ 원상회복비용을 달라는 것이 청구 내용입니다.
3. 피고(임차인) 주장
임차인은 상계로 맞섰습니다. 임차권등기 관련비용, 변호사비용, 보증금 지연손해금 등을 자동채권으로 하여 임대인의 청구와 상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중 결정적이었던 것은 임차권등기 관련비용 부분입니다. 임차인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 제8항이 '청구할 수 있다'고만 정할 뿐 행사 방법을 따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처음부터 짚어 두었고, 이 지점이 훗날 대법원 파기의 출발점이 됩니다.
4. 제1심 판단
제1심(서울북부지방법원, 2023. 6. 27. 선고)은 원고 승소로 판단하였습니다. 해지 이후 차임 상당 부당이득과 원상회복비용을 인정하였고, 임차권등기 관련비용 상계 부분은 "재판이 끝난 뒤 소송비용액 확정절차로 돌려받을 돈"이라는 이유로 배척하였습니다. 이 비용을 '소송비용'의 틀 안에 넣은 것입니다.
5. 제2심 항소 이유
피고가 항소했습니다. 핵심은 "임차권등기 관련비용은 주택임대차법이 별도로 인정한 실체법상의 청구권이므로 소송비용 확정절차에 가둘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6. 제2심(원심) 판단
제2심(서울북부지방법원 2024. 2. 8. 선고)은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비용도 결국 '소송비용 확정절차로 받아야 한다'는 틀을 그대로 유지하여 상계 주장을 배척하였고, 나머지 상계항변도 각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7. 대법원 판단
대법원(2025. 4. 24. 선고)은 임차권등기 관련비용 상계 부분을 뒤집었습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 제8항은 "임차인은 제1항에 따른 임차권등기명령의 신청과 그에 따른 임차권등기와 관련하여 든 비용을 임대인에게 청구할 수 있다." CaseNote라고만 정할 뿐 청구 방법을 따로 두지 않았으므로, 임차인은 민사소송이나 상계로 곧바로 행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원심이 그 비용의 존재와 범위를 심리하지 않은 채 "확정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상계 주장을 배척한 것은 법리오해와 심리미진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차임 상당 부당이득 산정이나 나머지 상계항변 판단은 유지되었지만, 상계의 자동·수동 채권을 전체적으로 다시 확정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원심판결 전부가 파기되었습니다. 환송 후 항소심(서울북부지방법원 2025. 10. 24. 선고)에서는 원고 일부 승소로 결론이 바뀌었습니다.
무엇이 바뀌었는지
사실인정과 증거평가는 그대로입니다. 바뀐 것은 법리입니다. 1심·항소심은 이 비용을 '소송비용'으로 보았고, 대법원은 주택임대차법이 별도로 창설한 '실체법상 청구권'으로 보았습니다. 이에 따라 심리 대상이 새롭게 편입되었고, 환송 후 주문도 원고 일부 승소로 조정되었습니다.
항소심 실무상 시사점 — 왜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결과가 바뀔 수 있었는지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1심과 항소심이 똑같이 "그 돈은 소송비용이니 따로 절차를 밟으라"고 했는데도 대법원이 결론을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아서도, 새 증거가 등장해서도 아니었습니다. 피고가 처음부터 구체적인 조문(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 제8항)을 근거로 짚어 두었고, 그 조문이 '청구권'만 인정하고 '행사 방법'은 정하지 않았다는 공백을 끝까지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피고는 "억울하다"는 감정적 호소가 아니라 "원심이 조항의 성격을 잘못 보아 당연히 해야 할 심리를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원심 이유의 구조를 지도처럼 그려 상고이유서를 써냈습니다. 또한 네 가지 상계 주장 중 다른 세 가지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가장 강한 한 줄이 인정되자 원심판결 전부가 파기되었습니다. 주장을 고르게 늘어놓기보다 핵심 한 줄을 끝까지 밀고 가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 사건에서 새로 등장한 증거는 없습니다. 임차권등기 신청서와 비용 증빙은 1심 때부터 있던 자료였는데도 1심·항소심의 틀 안에서는 심리 대상조차 되지 못했고, 대법원이 법리 틀을 교체하자 같은 자료가 전혀 다른 창구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항소심·상고심은 같은 주장을 한 번 더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자료를 다른 창구로 들여보내는 작업이라는 점을 기억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피고는 1심에서도, 항소심에서도 졌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놓지 않은 한 줄의 조문 해석이 대법원에서 인정되면서 원심이 통째로 뒤집혔습니다.
이 판결이 남기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항소심은 같은 재판을 한 번 더 하는 절차가 아니라 1심이 놓친 법적 구성을 다시 찾아내는 절차이고, 상고심은 사실을 다시 보는 자리가 아니라 원심 법리가 제대로 된 것인지 따지는 자리입니다.
저희가 항소심 사건에서 중점적으로 보는 부분도 바로 이와 같습니다. 1심 판결문의 이유를 처음부터 다시 뜯어보면서 어떤 법 조항이 근거가 되었고 어떤 조항이 빠져 있는지 확인하고, 같은 자료라도 달리 보일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어 항소이유서·상고이유서를 '1심 판단의 오류를 짚는 설계도'로 재구성하는 작업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보여주듯, 항소심·상고심에서 결과가 바뀌는 출발점은 언제나 '당사자가 어떤 근거 위에서 어떤 주장을 했는가'에 있기 때문입니다.
유사한 사건으로 상담이 필요하신가요?
박효관 법률사무소는 복잡한 사건 구조 설계와 쟁점 정리에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자료와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대응 방향을 상담을 통해 함께 정리해 보실 수 있습니다.